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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남자의 시선/요남자의 취미

와인이야기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바르바레스코



와이너리 중에 "협동조합"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곳들이 있다. 조금씩 구조가 다르기는 하지만 쉽게 말하면 소규모로 밭을 가지고 있는 농부들이 양조와 판매를 공동으로 하는 것인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양조 장비와 영업/마케팅 인력을 공동으로 사용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런 협동조합에서 만드는 와인 중에는 그저 그런 퀄리티의 와인들도 많다. 하지만 그래도 한 군데 괜찮은 데를 꼽아 보자면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바르바레스코 마을에 있는 Produttori del Barbaresco(이하 PdB)가 아닐까 싶다. 




이 와이너리를 처음 접한 것은 뉴욕에서 공부하던 시절이었는데, 그 당시 단골로 다니던 와인샵 아저씨는 "협동 조합 와인은 영혼이 없지..." 라고 하더니만 "그래도 이건 믿을만 해서 들여 놨어..."라며 나에게 들이민 와인이 그 가게에서 들여 놓은 유일한 협동 조합 와이너리 PdB였다. 



PdB는 2차대전 후 "아...우리 마을처럼 소규모로 농사 짓는 집들이 많은 동네는 뭉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가 없겠어..."라고 생각한 바르바레스코 마을의 한 성직자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이 성직자는 마을의 농부 19명을 설득해 공동으로 양조, 판매를 해보기로 하고 성당 지하에 양조장을 만들어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PdB의 탄생이다.




지금은 51개의 가족이 PdB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은 농사는 각자 알아서 짓고 포도를 수확하면 와이너리로 보낸다. 와이너리에서는 포도를 선별해 좋은 것은 Barbaresco(바르바레스코) DOCG 등급의 와인을 만들고, 품질이 떨어지는 포도들은 하나 아래인 Langhe Nebbiolo(랑게 네비올로) DOC 등급의 와인에 넣는다.




"아 올해는 농사 진짜 잘 됐다. 포도가 너무 좋네." 하는 빈티지에는 각각의 밭에서 난 포도 중 좋은 것만을 선별해 개별 밭의 이름이 들어간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바르바레스코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포도밭은 여러 개가 있고 PdB에 참여하는 농부들 역시 각기 다른 밭에 흩어져 농사를 짓는데, 그 중 유명한 밭이름을 몇 개만 늘어 놓자면 Rabajà(라바야), Pajè(파예) 같은 것이 있고 특히 유명한 곳이 바로 사진 속의 와인인 Asili(아질리) 밭이다.




아실리 밭의 포도로 만드는 와인이야 워낙에 품질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고, PdB는 Bruno Giacosa(브루노 지아코사) 등과 함께 언제나 믿고 마실 수 있는 퀄리티의 와인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요 2011년 와인은 특별히 참 잘 나와서 로버트 파커에서도 94+의 높은 점수를 줬고, 와인스펙테이터에서는 96점을 준 것도 모자라서 2016년 Top 100 와인 중에 이탈리아 와인으로는 가장 높은 등수인 5등으로 이 와인을 뽑아 버렸다. 




아직은 어린 와인이라 단단하지만 디캔터에 넣어 두고 살살 달래 주면 조금씩 열리면서 맛있게 변한다. 체리와 장미 향이 엄청 진하면서 담배 같은 냄새도 나고 비에 젖은 돌맹이 같은 냄새도 난다. 엄청 진하면서도 우아하고 섬세한 매력도 동시에 갖고 있는 재미난 녀석이다. 지금도 괜찮지만 앞으로 15년은 짱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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