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로 배우는 명언 1
고사성어는 한자 네 글자로 이루어진 성어가 많은데, 따라서 사자성어(四字成語)로도 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사성어와 사자성어는 겹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긴 해도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닙니다. 분류 범주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사성어는 그 성어가 '고사에서 유래했는가 아닌가'가 분류 기준입니다.
(구글 나무위키 참조)
001
온고지신(溫故知新)
溫(익힐 온) 故(옛 고) 知(알 지) 新(새 신)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서 공자는 옛 것을 익히어 새로운 것을 알게 되
면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라고 하였다. 이는 과거와 현
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인과(因果) 관계 속에서 발전의 원리를 깨달아야 함
을 말한 것이다.
옛 것과 새로운 것의 관계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은 대립과 단절만을 만들어낸
다. 구세대와 신세대, 여기에 쉰 세대와 낀 세대, X세대와 Z세대라는 표현들은 모
두 지혜롭지 못한 생각에서 나온 말들이다. 올챙이를 한자로 과두( ) 라고 하
고, 올챙이 적을 가리켜 과두시절( 時節) 이라 한다. 올챙이 없는 개구리, 개
구리 없는 올챙이는 존재할 수 없다.
선인들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는 고사성어(故事成語)야말로 현대를 사는 우리들
에게 반성과 발전의 실마리를 제시해 주는 가장 적절한 溫故知新 의 도구이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우리말의 복습(復習) 을 온습(溫習) 이라 표현하고 있으니,
이는 배운 것을 익히고 또 익혀 늘 가슴 속에 간직한다는 의미이다. 새로이 고
사성어(故事成語) 란을 집필함에 있어, 짧지만 깊은 옛 사람들의 지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 간절하다.
002
두꺼운 얼굴에 부끄럼은 없다
후안무치(厚顔無恥)
厚(투터울 후) 顔(얼굴 안) 無(없을 무) 恥(부끄러워할 치)
옛날 중국의 하나라 계(啓) 임금의 아들인 태강은 정치를 돌보지 않고 사냥만
하다가 끝내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 난다. 이에 그의 다섯 형제들은 나라를 망친
형을 원망하며 번갈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들의 노래는 모두 書經
의 <五子之歌>편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막내가 불렀다고 하는 노래에는
이러한 대목이 보인다.
만백성들은 우리를 원수라 하니, 우린 장차 누굴 의지할꼬.
답답하고 섧도다, 이 마음, 낯이 뜨거워지고 부끄러워지누나.
萬姓仇予, 予將疇依. 鬱陶乎予心, 顔厚有 .
厚顔 이란 두꺼운 낯가죽 을 뜻하는데, 여기에 무치(無恥) 를 더하여 후안
무치(厚顔無恥) 라는 말로 자주 쓰인다. 이는 낯가죽이 두꺼워서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사람 을 가리킨다. 지난 주 동안, 한보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낸 증인들 중
에는 후안(厚顔) 을 무기로 나온 이들이 많았다.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얼굴에는 수치(羞恥)의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만백성들은 지
금 그들이 태강의 동생들이 불렀다는 이 노래를 한번만이라도 읊조려 주기를 기
대하고 있다.
003
무자식이 상팔자
난신적자(亂臣賊子)
亂(어지럽힐 란) 臣(신하 신) 賊(해칠 적) 子(아들 자)
孟子 <등문공 文公>하편에는 맹자의 제자인 공도자가 제기한 논쟁에 관한
맹자의 답변이 실려 있다. 맹자는 자신이 논쟁을 피하지 않는 이유를 인의(仁義)
의 실천을 위한 것으로 설명하였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
자 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리들은 두려워 하였다(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 라는 구
절이 나온다. 후한서 <동탁전董卓傳>에도 너희들은 반역하여 천자를 핍박하
니, 역적들중에도 이제껏 너희같은 자들은 없었다(亂臣賊子未有如汝者) 이라는 구
절이 보인다.
亂臣賊子 란 임금을 죽이는 신하와 어버이를 죽이는 아들 또는 나라를 어
지럽히는 무리나 역적 등의 뜻이다. 옛날 영국에서는 국사범들을 런던탑(the
Tower of Londen)에 감금하였는데, 이 탑의 Thames강 쪽의 문을 the Traitor's
Gate 라 하였다. 이는 곧 亂臣賊子之門 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많은 亂臣賊子 들이 탄생과 함께 이슬로 사라져 갔지만, 여전
히 기억속에 살아있는 난신(亂臣) 의 탄생은 불과 18년전인 1979년 10월 26월
에 있었다. 하지만 한 시기에 亂臣 과 賊子 의 출현을 모두 보게 될지도 모른
다는 예감에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004
동에 번쩍, 서에 캄캄
신출귀몰(神出鬼沒)
神(귀신 신) 出(날 출) 鬼(귀신 귀) 沒(없어질 몰)
회남자淮南子 <병략훈兵略訓>에는 교묘한 자의 움직임은 신이 나타나고
귀신이 걸어가는 듯하며(神出而鬼行), 별이 빛나고 하늘이 운행하는 것 같아, 진
퇴 굴신의 조짐도 나타나지 않고 한계도 없어, 난조(鸞鳥:전설 속의 새이름)가 일
어나듯, 기린이 떨치고 일나는 듯, 봉황새가 날 듯, 용이 오르듯, 추풍과 같이 출
발하여 놀란 용과 같이 빠르다. 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는 적으로 하여금 어떠한 정보도 얻지 못하도록 철저한 보안 유지나 위장이 필요
하다는 뜻이다.
神出鬼沒 이란 바로 神出而鬼行 이라는 구절에서 연유된 말이다. 아무도 모르
게 귀신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뜻이며, 행동이 신속하고 그 변화가 심하여 헤
아릴 수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옛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神出鬼沒 했던 홍길동의 출생지를 놓고 요즈음 관
련 지방 자치단체들의 논쟁이 매우 진지하다.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일 것이라는
사실도 흥미롭거니와, 귀신 같은 양반을 서로 모시겠다고 열을 올리는 후손들의
길동 할아버지 에 대한 존경심은 시대적 해결사의 출현 을 고대하는 우리들의
속마음이 드러난 것이리라.
005
개구리는 짠물에서 못 산다
정중지와(井中之蛙)
井(우물 정) 中(가운데 중) 之(갈 지) 蛙(개구리 와)
장자莊子 <추수편秋水篇>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황하의 신(神) 하백(河伯)은 가을 홍수로 황하의 물이 불어나자 기뻐하며 천하
의 훌륭함이 모두 자기에게 모여있다고 생각하였다. 물을 따라 동해의 북쪽 바다
에 이르자 하백은 바다의 위세에 눌려 한숨을 지었다. 그러자 북해의 신(神)인
약(若) 은, 우물 속의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해 말해도 소용없는 것은 그가 좁은
곳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오(井蛙不可以語於虛也, 拘於虛也). 지금 당신은 대해를
보고 비로소 자신의 꼴불견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대도의 이치를 말할 수 있을
것이오. 라고 하였다.
井中之蛙 란 우물 안의 개구리, 즉 생각이나 식견이 좁은 사람이나 세상 물정
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井蛙不知大海 라거나 井底蛙 라는 표현도 모
두 같은 의미이다.
얼마전 까지만해도 Globalization 인지 세계화 인지를 외치며 우물 안의 개
구리 소탕을 선도했던 사람을 요즘 들어선 보기 어렵다. 뜬금없이 우물 밖으로
나가라 하니, 영어 과외가 급증하지 않고 국제 공항이 붐비지 않고서야, 달리 무
슨 방법이 있겠는가.
006
스스로 하도록 도와주는 것
조장(助長)
助(도울 조) 長(길 장)
孟子 <공손추公孫丑>상편에는 공손추와 맹자의 문답이 실려 있다.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 를 설명하고 나서, 순리(順理)와 의기(義氣)의 중요성을 강조
하기 위하여 송(宋)나라의 한 농부의 조급한 행동을 예로 들었다. 그 농부는 자기
가 심은 곡식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그 싹들은 뽑아 올렸으나,
그 싹들은 모두 말라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리해서라도 잘 되게 하려고 했던
농부의 행동은 오히려 무익(無益)의 정도를 넘어서 해악(害惡)이 되었던 것이다.
助長 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도와서 성장시키다 라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
는 것 같지만, 사실은 쓸데없는 일을 해서 일을 모두 망쳐버리다 라는 부정적
의미가 훨씬 강하다.
싹과 같은 우리의 아이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그리고 과외 학원을 전전하며 뿌
리가 흔들리도록 助長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맹자는 아이들을 가르침에 마음
을 망령되이 갖지 말며(心勿忘), 무리하여 잘 되게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勿助
長也) 고 우리 어른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어린이날 하루 만이라도 마음껏 놀도록 아이들을 助長 해 보았으면.
007
용의 눈물, 여기에서 그치다
도룡지기(屠龍之技)
屠(잡을 도) 龍(용 룡) 之(갈 지) 技(재주 기)
장자莊子 <열어구편列禦寇篇>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실려있다.
장자는 주팽만은 용을 죽이는 방법을 지리익에게서 배우는데, 천금이나 되는
가산(家産)을 탕진하고 삼 년만에야 그 재주를 이루었지만 그것을 써먹을 곳이
없었다(朱 漫學屠龍於支離益, 單千金之家, 三年成技, 而無所用其巧). 성인은 필연
적인 일에 임할 때에도 필연으로 여기지 않으므로 마음속에 다툼이 없지만 범속
한 사람들은 이와 반대로 마음속에 다툼이 많다. 라고 말하며, 소인들은 사소로운
일에 얽매여 대도(大道)를 이룰 수 없음을 지적하였다.
屠龍之技 란, 곧 많은 돈과 세월을 투자하여 배웠으나 세상에서 써먹을 데가
없는 재주를 말한다. 본시 龍 이란 상상 속의 동물일뿐이니, 주팽만이 고생 끝에
배운 기술은 결국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는 것이다.
九龍 이다 二龍 이다 해서 먼저 승천(昇天)하려고 다투는 용들이 유독 많은
것도 요즈음 들어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들은 모두 승천하는 기술과 용 잡는
기술을 연마하는데 온 정신을 쏟고 있다. 주팽만의 屠龍之技 가 진가를 발휘하
여, 용의 눈물이 그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008
여우 뒤엔 호랑이가 있었다
호가호위(狐假虎威)
狐(여우 호) 假(빌릴 가) 虎(범 호) 威(위엄 위)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는 기원전 4세기 초, 중국의 전국시대 초나라의
선왕(宣王)이 위(魏)나라 출신의 신하인 강을(江乙)에게 북방 강대국들이 초나라
재상(宰相)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 하는 이유를 묻는 대목이 실려 있다.
강을은 여우와 호랑이의 고사 를 인용하여 그 이유를 설명하였다. 즉, 짐승들
이 두려워 한 것은 여우가 아니라 그의 뒤에 있던 호랑이였다는 것이다. 이는 북
방의 여러 나라들이 두려워 하는 것이 재상 소해휼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선
왕의 강병(强兵)임을 비유한 것이었다.
이렇듯 狐假虎威 란 아무 실력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의 권세나 배경을 빌어
위세 부리는 사람 을 비유한 말이다. 狐假虎威 를 일러 영어로는 an ass in the
lion's skin(사자의 탈을 쓴 나귀) 이라고 하였던가. 하지만 죽은 사자의 탈을 쓴
나귀보다는 살아있는 호랑이를 꼬여 뭇 짐승들을 속인 여우쪽이 훨씬 교활하고
가증스럽다. 여우 같은 사람과 여우의 잔꾀에 속아 넘어간 눈먼 호랑이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는 전에 없이 뒤숭숭한 것이다.
009
할머니를 모시는 손자의 효심
烏鳥私情(오조사정)
烏(까마귀 오) 鳥(새 조) 私(사사 사) 情(뜻 정)
진(晋)나라 사람 이밀(李密)이 쓴 <진정표陳情表>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실
려있다. 이 글은 조모 유씨의 병세가 위독하여 이밀이 부득이 관직을 사양하게
됨을 황제께 고하는 글이다.
저는 조모가 안계셨더라면 오늘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며, 조모께서는 제가 없
으면 여생을 마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금년 44세이고, 조모 유씨는 96세이니,
제가 폐하게 충성을 다할 날은 길고 조모 유씨에게 은혜를 보답할 날은 짧습니
다. 까마귀가 어미새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조모가 돌아가시는 날 까지
만 봉양하게 해 주십시오(烏鳥私情, 願乞終養).
이밀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하씨가 개가하자,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으
며, 효심이 두터워서 할머니의 병 간호를 하고자 황제가 내린 관직을 물리쳤다.
烏鳥私情 이란 까마귀가 자라면 그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이듯 그처럼 부
모를 모시는 지극한 효심 을 이르는 말이다. 옛부터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를
읽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고, 이밀의 <陳情表>를 읽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라고
하였다. 손자의 카네이션 한 송이가 돋보이는 특별한 어버이날이 되었으면 좋겠
다.
010
배 두드리며 골프는 치지만
鼓腹擊壤(고복격양)
鼓(두드릴 고) 腹(배 복) 擊(부딪칠 격) 壤(흙 양)
십팔사략十八史略 에는 요(堯)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이 지난 어느 날 민심을
파악하고자 천한 옷을 입고 시내를 돌았을 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요임금
은 거리에서 아이들이 임금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 조금 후에는,
한 노인이 무언가를 먹으면서 부른 배를 두드리며(鼓腹), 격양 놀이 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노인은 해가 뜨면 들에 밭을 갈고, 해가 지면 들어와 쉬네. 샘을
파서 물을 마시고 농사지어 먹고 사니,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리오.
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정치가 잘 되어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여유를 즐기
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요 임금은 흐뭇한 마음으로 궁으로 돌아 왔다.
鼓腹 은 부른 배를 두드리다 라는 뜻이다. 壤 은 본시 나무로 만든 신발모양
의 놀이 도구이며, 30-40걸음 떨어진 곳에서 이것을 서로 맞치는 놀이를 격양擊
壤 이라 했다. 따라서 鼓腹擊壤 은 부른 두드리며 양 치기 놀이를 하는 것 인
데, 이는 곧 太平聖代(태평성대) 를 상징한다.
하지만 그저 잘 먹고 골프 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태평성대일 수는 없다.
鼓腹擊壤 은 진정 마음까지 편안한 시대에라야 어울리는 말이다.
011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
西施 目(서시빈목)
西(서녘 서) 施(베풀 시) (찡그릴 빈) 目(눈 목)
莊子 <천운편天運篇>에는 춘추시대 월(越)나라의 미인인 서시(西施)의 이야
기가 나온다.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서시가 가슴을 앓아 눈을 찡그리고 있으
니, 그 마을의 다른 추녀(醜女)가 이를 보고 아름답다고 여기고, 집으로 돌아와서
역시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찡그렸다(西施病心而 , 其里之醜人, 見而美之, 歸亦
捧心而 ). 그 결과 어떤 이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어떤 이들은 아
예 그 마을을 떠나버렸다.
이 이야기는 공자의 제자인 안연과 악관(樂官)인 金 이라는 사람이 나누는 대
화중에 나온다. 장자는 당시 주(周)왕조에서 이상정치를 재현하려는 것을 서시의
찌푸림을 본받는 추녀의 행동같은 것으로서 사람들의 놀림받는 쓸데 없는 짓이라
여겼던 것이다.
西施 目(서시가 눈을 찡그리다) 이란 아무런 비판 없이 남을 흉내 내는 것
을 비유한 것이며, 효빈(效 :눈쌀 찌푸림을 흉내내다) 이라고도 한다. 맹신(盲
信)과 맹목적 추종은 그 추녀다운 사고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유행에 민감해지
는 것이 아니라 타당한 주관(主觀)과 합리적 비판에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012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
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
苛(매울 가) 政(정사 정) 猛(사나울 맹) 於(어조사 어) 虎(범 호)
예기(禮記) 단궁편檀弓篇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실려있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 기슭을 지나고 있는데, 한 부인이 무덥 앞에서 울며 슬퍼하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에게 그 까닭을 묻게 하였다. 그 부인은 대답하길 오래전에
시아버님이 호랑이게 죽음을 당하였고, 저의 남편 또한 호랑이에게 변을 당하였
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의 아들마저 호랑이게 목숨을 잃게 되었답니다. 라고
하였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그 부인은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無苛政). 라고 짧게 대답하였다. 자로의 말을 듣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잘 알아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다(苛政猛於虎也). 라고
하였다.
춘추 말엽 노(魯)나라의 대부 계손자(系孫子)의 폭정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은 차
라리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쪽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苛政 이란 번거롭고 잔혹
한 정치 를 뜻한다. 政 을 徵(징) 의 차용으로 보아 번거롭고 무서운 세금과
노역 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잔혹한 정치, 무거운 세금이나 노역은, 결국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에게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들이다.
013
사람을 찾습니다
家貧思良妻(가빈사양처)
家(집 가) 貧(가난할 빈) 思(생각할 사) 良(좋을 량) 妻(아내 처)
사기史記 위세가魏世家에는 위나라 문후文侯가 재상 임명을 위해 이극(李克)에
게 자문을 요청하면서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위문후는 이극에게 말하길, 선생께서 과인에게 말씀하시길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를 그리게 되고, 나라가 혼란하면 훌륭한 재상을 그리게 된다(家貧思良
妻, 國亂思良相) 라고 하셨습니다. 제 동생인 성자(成子)와 적황(翟璜) 중, 어떤 이
가 적합합니까? 라고 하였다. 이에 이극은 문후에게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사항
을 진언한다. 평소에 지낼 때는 그의 가까운 사람을 살피고, 부귀할 때에는 그와
왕래가 있는 사람을 살피고, 관직에 있을 때에는 그가 천거한 사람을 살피고, 곤
궁할 때에는 그가 하지 않는 일을 살피고, 어려울 때에는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살피십시오.
위나라 재상이 된 사람은 바로 성자(成子)였다. 비록 문후의 동생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소득 중 10%만을 생활에 쓰고, 나머지 90%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
하였다. 어진 아내 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어진 재상 으로서도 적임자였던 것이
다. 家貧思良妻 나 國亂思良相 이라는 말은 모두 어려운 시기에는 유능하고
어진 인재가 필요하게 된다 것을 뜻한다.
014
킬링 필드
肝腦塗地(간뇌도지)
肝(간 간) 腦(뇌 뇌) 塗(칠할 도) 地(땅 지)
사기(史記) 유경열전(劉敬列傳)에는 한(漢)나라 고조(高祖)와 유경의 대화가 실
려 있다. 유경은 고조에게 폐하께서는 촉땅과 한을 석권하고, 항우와 싸워 요충
지를 차지하도록까지 대전(大戰) 70회, 소전(小戰) 40회를 치렀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간과 골이 땅바닥을 피칠하게 되었고, 아버지와 자식이 들판에서 해골
을 드러내게 된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使天下之民, 肝腦塗地, 父子暴骨中
野, 不可勝數). 라고 하였다.
유경은 덕치(德治)가 이루어졌던 주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한나라 고조는 많은
전쟁을 치르며 땅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발생할 반발세력의 저항이나 외부
의 침략을 예상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고조에게 옛 진나라의 요충지인 함양
(咸陽)을 도읍으로 정하도록 충고하였던 것이다.
肝腦塗地(간과 뇌가 흙과 범벅이 되다) 란 전란(戰亂)중의 참혹한 죽음을 형용
한 말이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속에서 인간들이 겪어야하는 죽음의 모
습은 바로 이러한 것이리라. 지난 주 TV에 보도되었던 르완다 사람들의 죽음의
귀향 열차 91명 압사 라는 화면은 肝腦塗地 를 연상케 하였다.
015
물보다 더 미지근한 얼음(?)
靑出於藍(청출어람)
靑(푸를 청) 出(날 출) 於(어조사 어) 藍(쪽 람)
순자荀子 <권학편勸學篇>의 첫 장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된다.
군자가 말하길, 배움은 그쳐서는 아니된다. 푸른색은 쪽풀에서 취하였지만 쪽
빛보다 더 푸르며, 얼음은 물이 얼어서 된 것이지만 물보다 더 차다라고 하였다
(學不可以己. 靑取之於藍而靑於藍, 氷水爲之而寒於水).
성악설을 주장한 전국시대의 학자 순자는 남풀과 청색, 그리고 물과 얼음의 비
유로써 교육에 의한 인성의 교정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악(惡)하
고 이(利)를 탐하고 질투하고 증오하므로, 스승의 가르침과 예의로써 이를 교정하
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藍 이란 본시 그 잎으로 남색 염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식물의 이름이다. 남
풀 에서 챙색을 추출하는 과정이나 물이 얼음으로 변화되는 과정은 곧 교육 을
비유한 것이니, 靑出於藍 이란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나게 변화된 것을 일컫
는 말이다. 出藍 이라는 표현도 같은 뜻이다.
진정으로 남풀 과 물 의 역할을 하는 스승, 챙색 과 얼음 으로 변화된 제자
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靑出於藍 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할지 고
민하는 스승의 날 이 되었으면 한다.
016
세 사람이 만들어낸 호랑이
三人成虎(삼인성호)
三(석 삼) 人(사람 인) 成(이룰 성) 虎(범 호)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에는 위나라 혜왕(惠王)과 그의 대신 방총이 나눈 대
화가 실려 있다. 방총은 태자를 수행하고 조(趙)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없는 사이에 자신을 중상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을 우려하여, 위 혜왕에게
몇 마디 아뢰게 된다.
만약 어떤이가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을 한다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
니까? 라고 묻자, 위 혜왕은 그걸 누가 믿겠는가? 라고 하였다. 방총이 다시 다
른 사람이 또 와서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고 묻자 왕은 그
렇다면 반신반의하게 될 것이네. 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방총이 세 사람째 와서
똑같은 말을 한다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라고 하자 왕은 곧 과인은 그것
을 믿겠네. 라고 하였다. 이에 방총은 시장에 호랑이가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러
나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三人言而
成虎). 라고 말하면서, 그는 자신을 중상모략하는 자들의 말을 듣지 않기를 청하
였다.
三人成虎 란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들이 말하게 되면 진실처럼 들리게 되어
버린다 는 것을 뜻한다. 우리 사회의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말들이 혹시 진짜
호랑이를 만들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017
하루가 삼년같은 그리움
一刻三秋(일각삼추)
一(한 일) 刻(새길 각) 三(석 삼) 秋(가을 추)
시경(詩經) 왕풍(王風)에는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채갈(采葛) 이라는
시(詩)가 있다.
그대 칡 캐러 가시어 하루동안 못 뵈어도 석달이나 된 듯하고(彼采葛兮 一日
不見 如三月兮), 그대 대쑥 캐러 가시어 하루동안 못 뵈어도 아홉달이나 된 듯하
고(彼采蕭兮 一日不見 如三秋兮), 그대 약쑥 캐러 가시어 하루동안 못 뵈어도 세
해나 된 듯하네(彼采艾兮 一日不見 如三歲兮).
고대 중국에서는 일주야(一晝夜)를 일백각(一百刻)으로 나누었는데, 절기(節氣)
나 주야(晝夜)에 따라 약간 다르다. 예컨대, 동지에는 낮이 45각, 밤이 55각이었
고, 하지에는 낮 65각, 밤 35각이었다. 춘분과 추분에는 낮이 55각반이었고, 밤은
44각반이었다. 청(淸)대에 이르러서는 시종(時鐘) 으로 시간을 나타내게 되었으
며, 현대 중국어에서는 15분을 一刻 이라 한다. 하지만 옛사람들은 一刻 이라는
말로써 매우 짧은 시간을 표현하였다. 一刻三秋 나 一刻如三秋(일각여삼추) 라
는 말은 이 시의 一日三秋 라는 표현에서 유래된 것으로 모두 같은 의미이다.
一刻三秋 란 짧은 시간도 삼년같이 느껴질 정도로 그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함을
나타낸 말이다.
018
관 뚜껑에서 밝혀지는 진실
蓋棺事定(개관사정)
蓋(덮을 개) 棺(널 관) 事(일 사) 定(정할 정)
두보(杜甫)가 사천성(四川省)의 한 산골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을 때이다. 마침
그곳에는 자신의 친구 아들인 소계(蘇係)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실의에 찬 나날
을 보내고 있었다. 두보는 소계에게 한 편의 시를 써서 그를 격려하고자 하였다.
그의 군불견 간소계(君不見 簡蘇係) 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그대는 보지 못했
는가 길 가에 버려진 못을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부러져 넘어진 오동나무를/
백년되어 죽은 나무가 거문고로 만들어지며 / 조그만 물웅덩이 속에도 큰 용이
숨어 있을 수 있네. / 장부는 관 뚜껑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결정되는 법이네(蓋
棺事始定) / 그대는 다행히도 아직 늙지 않았거늘.....
이 시를 읽은 소계는 후에 그곳을 떠나 호남 땅에서 설객(說客)이 되었다고 한
다. 蓋棺事定 이란 죽어서 관의 뚜껑을 덮은 후에라야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결정된다 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죽은 이의 업적을 찬양하기도 하고, 생
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80년 5월에 관 뚜껑이 덮혀졌던 많은 이들, 그들은 거의 20년만에야 자신들의
자리가 정해지게 된 셈이다.
019
낙엽에서 가을을 찾다
一葉知秋(일엽지추)
一(한 일) 葉(잎 엽) 知(알 지) 秋(가을 추)
회남자 설산훈(說山訓)에는 하나의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 해가 장차
저물려는 것을 알고(見一落葉而知歲之將暮), 병 속의 얼음을 보고 천하에 추위가
닥쳐옴을 아는 것은 가까운 것으로써 먼 것을 논한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또
한 당나라 한 시인의 시(詩)에는 떨어지는 잎새 하나로 천하가 가을임을 알다
(一落葉知天下秋). 라는 구절이 보인다.
一葉知秋 는 하나의 낙엽을 보고 곧 가을이 왔음을 알다 라는 뜻이다. 이는
사소한 것으로써 큰 것을 알며, 부분적인 현상으로써 사물의 본질이나 전체, 발전
추세 등을 미뤄 알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우리들은 정치와 경제에서, 그리고 교육에서도 낙엽들을 보았으며, 지금도 사회
각 분야에서 새로이 떨어지는 많은 잎사귀들을 보고 있다. 하지만 서양 속담에
One swallow does not make a summer(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여름이 되는 것
은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성급한 판단을 삼가라는 뜻이다. 지금 몇몇의 낙엽들
이 눈에 띄인다고 해서 가을과 겨울의 뒤를 이어 나타날 봄까지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一葉知秋 와 유사한 표현으로는 以偏槪全(이편개전) , 즉 반쪽으로
써 전체를 짐작하다 라는 말이 있다.
020
오래사는 미인은 가짜 미인
佳人薄命(가인박명)
佳(아름다울 가) 人(사람 인) 薄(엷을 박) 命(목숨 명)
소동파(蘇東坡)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송대(宋代)의 시인 소식(蘇軾)은 진사,
학사, 예부상서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정치적으로는 순탄하지 않았다. 또한 경제
적으로도 어려웠는데, 이러한 환경은 그로 하여금 심도 있는 작품을 쓰게하는 요
인으로 작용하였다. 佳人薄命 이라는 말은 그의 칠언율시 박명가인(薄命佳人)
에 나온다.
두 볼은 엉긴 우유빛 머리는 옻칠한 듯 검고 / 눈빛이 발에 비추어 구슬처럼
반짝인다. / 하얗고 하얀 비단으로 선녀의 옷을 지어 입고 / 타고난 바탕을 더럽
힐까 입술연지는 바르지 않았네. / 오나라 사투리의 예쁜 목소리 앳되기만 한데 /
한없는 근심은 전혀 알 수 없네. / 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의 운명 기박함이 많
으니(自古佳人多命薄) / 문을 닫은채 봄이 지나가면 버들꽃도 떨어지리.
본래 이 시에서는 佳人命薄 이라 하였으나 후에는 佳人薄命 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美人薄命(미인박명) 이라는 말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佳人薄命 이란
미모가 뛰어난 여자는 그 운명이 기구하거나 길지 못함 을 뜻하는 말이다. 머리
에서 발끝까지 뜯어고친 여인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들은 외모를 위해 수명과
운명이라는 내실(內實)을 포기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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