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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남자의 시선/요남자의 취미

소통, 곁이 되어주다

소통, 곁이 되어주다


‘나는 잘 보고 있다’라니, 천만의 말씀


인간은 실수하기 마련이다. 한두 가지의 실수때문에 일어나는 사건도 있지만, 자잘한 실수가 모여 마침내 커다란

위기를 불러오기도 한다. 인간은 왜 실수를 범할까? 시각이 편향되어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코넬 대학교의 대니얼 사이먼스 교수와 대니얼 레빈 교수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일명 ‘주의맹’이라

는 실험으로 어떤 남자에게 길을 지나가던 학생(실험 대상) 한 명을 붙잡고 길을 묻게 했다. 그리고 길을 가르쳐주

는 도중 문을 옮기는 사람들이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게 했다. 방해 시간은 약 1초 정도. 이와 동시에 길을 묻는

남자를 다른 사람으로 바꿨는데, 놀랍게도 길을 가르쳐주던 학생은 바로 눈앞의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실험 결과, 이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는 위기상황이 코앞에 닥쳤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현상과 일치한다. 천재지변처럼 순식간에 터지는 위기도 있

지만, 대부분 위기에는 전조 증상이 있다. 대지진이 터지기 전에 방사성 동위원소 양의 변화, 지진파 변화 등 크고

작은 전조 현상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위기는 전문가의 조언·경고·예측과 일치하지 않는 설문조사 등의 전조

증상을 동반한다. 하지만 ‘슛’을 눈앞에 둔 사람은 축구화가 벗겨지고 골키퍼가 바로 앞에 나와 있다는 사실을 간

과한다.




내 잘못은 없어!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합리화의 함정


또 하나는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점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실제보다 높이 평가한다. 지난 30년에 걸친 연

구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평균보다 능력 있고,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한다고 집계됐다. 이는 대부분의 문

화권에서 공통적이었다. 에이미 메즐리스의 연구팀은 수백 차례에 걸친 조사를 통해, 거의 모든 문화권 대다수의

사람이 자신을 실제보다 더 높이 평가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처럼 자신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기만

적 우월감 효과(Illusory superiority effect)’라고 한다. 이 효과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회사에서

‘나의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인간성과 사교성은 어느 정도인가?’ 등의 문항으로 자기 능력 평가를 시행하면, 대다

수의 직원은 하나같이 ‘나는 능력 있으며 주변 직원들과 협조를 잘한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다른 직원들에게 ‘A 직

원은 어떤가요?’ 라고 물으면 본인이 스스로 내리고 있는 평가와는 전혀 다른 말이 흘러나온다.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의 실험도 이를 반영한다. 연구자들은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시절의 성적을 떠올려보라

고 주문한 뒤 실제 성적표와 비교했는데, 학생들은 과거의 성적과 한참 동떨어진 답을 했다. 게다가 자신의 실제

성적보다 한참 높은 점수로 기억하고 있었다. 즉, 스스로에 대해 지나치게 긍정하는 것이다. 특별하고 멋지고 능력

충만한 자신은 인정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는 ‘잊어버린다’. 그래서 약 2000년 전 율리우스 카이

사르는 “대부분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밖에 보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성공하면 본인 덕분이고 실패

하면 남 탓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세상이기에, 사건이 터지고 급박하게 회의를 하면 ‘내 잘못이다’라고 하

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긍정심리학의 범람, 그리고 잃어버린 것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 교수는 인간의 강점에 주목하

는 긍정심리학을 강조해왔다. 그는 사고방식도 인간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많은

사람이 긍정심리학의 열풍에 휘말렸다. 물론 긍정적 태도는 생산성을 높이고 개개인의 행복감을 높이는 데 기여한

다. 그러나 이는 비판적인 사람에 대해 이전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데도 일조했다. ‘함께 일하기 힘든 사람’·‘적절한

아이디어에 제동을 거는 사람(사실 그 아이디어의 맹점을 제대로 지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근처에 있으면 기분

이 나빠지는 사람’·‘부정적인 기운이 맴돌아 가까이 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평가는, 긍정심리학의 범람으로 더욱 하

향곡선을 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당하고 예리한 지적을 하는 사람은 중요 자리에 기용되기는커녕 오히려 기피당

해 왔다.


그러나 위기는 이들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는 이들은 설익은 아이디어

를 한 번 더 곱씹어 진심 어린 걱정과 이의제기를 한다. 맹목적인 낙관주의는 수많은 오류와 실패를 가져오지만,

비판적인 태도는 불필요한 시간 낭비와 예측 가능한 실수를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비판적인 자

세의 가장 큰 역할은 ‘플랜B’를 구축해 실패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제1안이 실패했을 때 미리 제2안,

3안을 마련해뒀다면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다.




위기를 예방하는 해결책


① 서로의 업무 능력을 ‘의심’하라

 마취의사들의 위기 해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런 일이 많이 줄었지만, 예전에는 마취의사들의 실수

로 환자들이 사망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장시간 수술에 지친 의사가 환자의 호흡관이 제대로 꽂혀 있는지 확인하

는 것을 ‘깜박’하는 바람에 환자가 질식사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특정 마취약에서는 일산화탄소가 발생하는데, 이

를 환자에게 허용량 이상 마시게 하는 바람에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환자는 물론 의사의 목

숨까지 앗아간 경우다. 해당 의사는 정전기를 예방하기 위해 고무 밑창 신발을 신고 주머니 속에 금속 패드를 넣었

는데, 마취물질 중 일부가 이와 반응해 폭발하는 바람에 환자와 의사 모두가 사망했다.

이 같은 의료사고들을 해결하기 위해, 마취의사들은 체크리스트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기억력과 경험을 과

신하기보다는, 근무 중 사고로 이어질 만한 내용에 해당하는 항목을 하나하나 점검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주변

의료진에게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이전에는 수술 과정에서 간호사가 의사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과도한 의료사고라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사들은 ‘권위’를 내려놓았다. 덕분에

간호사를 비롯한 다른 의료진이 마취의사가 ‘깜박’했을 경우 적극적으로 이를 지적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는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다. 의료사고가 40배나 줄어든 것이다.

기업에서도 이를 활용하자. 물론 직원마다 맡은 바 직무가 있지만, 다른 사람의 업무에 대해서 ‘나 몰라라’하면 누

군가가 치명적인 실수를 터뜨려도 이를 수습할 기회가 없다. 다른 사람의 업무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서로 ‘참

견’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윗사람에게 조언할 수 있는 유연한 분위기가 필요하다. 아랫사람에게 질책하기는 쉽지

만 윗사람의 실수를 바로잡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에 아직도 국내 기업에서는 먼 이야기이다. 이를 먼저 바

로잡는 기업이 실패를 최소화할 ‘승자’다.


 ②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기용하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일의 성패는 결국 세밀한 부분을 얼마나 꼼꼼하게 살피느냐에 달렸다. 우리는 열정적인, 몰

입하는, 내 몸같이 일하는 직원을 지나치게 선호한다. 열광은 즐겁게 일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위기를 사전에

파악하고 대비하는 데는 회의적이다. 방해자·불평불만이 많은 혹평가로 평가받는 사람들은 좋게 평가받은 제안을

곱씹고, 까다롭게 살펴보면서 꼼꼼하게 구멍을 메운다. 이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위기를 예방할 수 있다.

 

③ 위기와 만났을 때는 배움의 기회로

위기도 종류가 있다. 가볍게 지나가는 열병 같은 위기가 있는가 하면, 해당 기업이나 집단·조직·혹은 한 인간의 가

장 중요한 핵심을 파괴하는 치명적인 위기가 있다. 물론 평소에 이를 대비해 N개의 대안을 마련해 뒀다면 좋았겠

지만,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도요타의 위기 극복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겠다. 도요타의 위기는 911에 날아 들어온 한 통의 전화에서 비롯됐다.

2009년 8월, 신형 렉서스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한 일가족이 급박한 구조 요청 전화를 남겼다. 시속 80마일(50킬

로미터)로 렉서스를 몰고 가던 도중 갑자기 190마일(약 120킬로미터)까지 속도가 올라가 사고가 난 것. 결국 아내

와 딸, 처남을 비롯한 일가족 네 명이 모두 숨졌다. 원인은 가속페달 결함이었다. 문제는 당황한 도요타가 ‘우리 제

품 잘못이 아니다’라며 부인해버린 것. 일가족이 사망한 데다 그들의 급박한 목소리가 미국 TV 방송에 공개된 상

황이었으니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도요타의 이미지는 급속히 추락했다. 조사 당국과 언론에 의해 잘못이 명명백백

히 밝혀지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포와 분노를 느낀 소비자들은 도요타 차를 리콜하기 시작했다. 무려 1천만 대

가 리콜 당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였고, 모두가 ‘도요타는 이제 끝났다’고 수군거렸다 .

하지만 도요타는 이 위기를 극복했다. 가속페달 결함에만 주목한 게 아니라, ‘왜 가속페달에 결함이 생겼나?’를 파

고들었다. 부품 개발과정에서 본사와 부품제조사, 일본과 해외 조직 사이의 책임·권한이 애매한 것이 문제의 시발

이라고 본 것이다. 리콜 위기가 터진 지 불과 반년 만에 회사를 안정화하는 데 성공했음은 물론, 대단위 재택근무

제로 체질을 개선했고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는 점까지 개선됐다.

위기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강력한 신호다. 지금까지의 방식을 개선해야 하는 계기인 동시에 이제까지 자신의 인생

에 대한 진단이기도 하다. 위기를 마주했을 때는 새로운 배움과 변혁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생각하고 ‘반전’을 노려

 보자. _ 이 현 수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