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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남자의 시선/지식인의 서재

메시-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


메시-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상상 이상의 결과

재즈의 전설 키스 재럿의 음반 중에 유난히 사랑받는 명반이 있다. <쾰른 콘서트> 음반은 350만 장이 팔려

나갔다. 그 어떤 솔로재즈나, 피아노 앨범도 이만큼의 인기를 얻은 경우가 없다. 이 음반의 탄생에는 비하

인드 스토리가 있다.

1975년 1월 27일, 키스 재럿의 공연은 17세의 베라 브란데스라는 소녀가 기획했다. 쾰른 오페라하우스의

넓은 무대와 장엄한 녹색 조명을 보며 베라는 흥분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공연

을 몇 시간 앞두고, 재럿은 피아노의 상태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재럿은 뵈젠도르퍼 피아노를 요청했지

만 극장 측에서는 상태가 좋지 않은 피아노만 둔 채, 모든 직원이 퇴근해버렸다. 재럿은 음향상태가 완벽하

지 않으면 절대로 무대에 서지 않고, 심지어 무대에서 플래시만 터져도 공연장을 뛰쳐나가 버리는 괴짜 중

의 괴짜였다. 그런 그가 엉망인 피아노를 연주할 리 없었다.

스텝들은 급하게 수소문해 찾아낸 피아노를 설치했지만, 튜닝도 전혀 되어있지 않았고, 심지어 가운데 검

은 건반은 소리도 나지 않았다. 페달은 눌러지지도 않았다. 무대 위에 설치된 피아노는 공연용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작은 피아노’였다. 1천400여 명의 관객 맞이를 앞두고 베라는 생애 최악의 날이 찾아왔음을 알

게 됐다. 절망에 빠진 베라는 비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재럿에게 제발 연주를 해달라고 사정했다. 재럿은

이렇게 말했다. “잊지 마. 오늘은 순전히 너 때문에 하는 거야.”

그렇게 탄생한 명반이 <쾰른 콘서트>다. 형편없는 피아노 덕분에 재럿은 깽깽거리는 고음부 대신 중간 톤

을 최대한 활용했다. 부족한 공명을 보충하기 위해 왼손은 투덜거리듯 반복적인 베이스 리프를 유지했다.

그 결과 연주는 거의 무아지경에 빠진 듯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피아노 소리가 크지 않았기에, 재럿은 건반

을 인정사정없이 두드렸고, 명연주를 완성해냈다.

사설이 길었다. 이 일화가 주는 교훈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수용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상상 이상의 결

과가 있음에도, 우리는 너무 쉽게 정확하고 완벽한 시스템과 질서정연함에 굴복하고 만다’는 것이다 .

『파이낸셜 타임스』의 간판 칼럼니스트 팀 하포드의 신간이 나왔다. 밀리언셀러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인

그가 이번에 새롭게 꺼낸 화두는 바로 ‘혼돈의 힘’이다. 완벽한 피아노를 고집하는 키스 재럿의 바람은 시스

템과 질서에 대한 유혹이 얼마나 강렬한지 보여주는 예다. 비단 연주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완벽한 원

고를 요구하는 정치인, 면밀한 전략을 세우고자 하는 군인, 잡생각을 지워 버리고자하는 작가, 책상 정리를

요구하는 직장상사까지. 우리는 쉽게 질서의 유혹에 굴복당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정리되지 않은 혼란함과 우발적인 잡생각이 우연한 영감을 이끌어낸다고 주장한다. 깔끔한

사무실은 쉽게 무기력과 의욕 저하를 일으키며, 파괴적 아웃사이더는 새로운 통찰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

『메시』는 혼란과 무질서의 다양한 측면을 탐구한다. 이 작은 변화가 일궈내는 창조적 혁신과 회복탄력성,

예상치 못한 성과를 촉발하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질서의 유혹에 굴복당하지 마라

세계적으로 성공한 두 기업의 차이점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애플과 교세라의 경우다. 월터 아이작슨

의 전기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편집증적인 경영자였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만큼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고자 했던 잡스는 디자인을 향한 들끓는 열정을 픽사 본사를 짓는 데 쏟았다. 얇은 콘크리트 벽을 사

용해 돈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 사후 ‘스티브 잡스 빌딩’이라 명명된 이 건물은 강철, 유리, 나무, 벽돌로만

『메시』는 정리되지 않은 혼란함과 우발적인 잡생각이 우연한 영감을 이끌어낸다고 주

장한다. 깔끔한 사무실은 쉽게 무기력과 의욕 저하를 일으키며, 파괴적 아웃사이더는

새로운 통찰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창의적인 협업은 결국 불협화음에서 나오며 무

질서와 혼돈은 어쩌면 ‘생존’의 비결일지 모른다.

이루어져 있다. 외관보다 중요한 건 내부 설계였다. 잡스는 우연하게 발생하는 상호작용이란 개념에 매료

되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함께 섞여 일하도록 할 수 있을까? 그는 묘안을 떠올렸다. 픽사 건

물의 화장실을 메인 로비 한 곳에만 설치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화장실에 가야 하고, 따라서 픽사 직원들

은 로비로 모일 것이라는 가설이었다. 직원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도 하고 예전에 만난 사람

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픽사의 사장 에드 캣멀은 이렇게 잡스 빌딩이 만들어낸 변화를 설명한다. “매일같이 우연한 만남이 계속 일

어났다.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우연히 무언가를 발견할 가능성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건물에 들어서면 활기가 느껴졌다.”

이번엔 일본의 거대 전자 회사 교세라를 만나보자. 경영학에는 5S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다. Sort(정리),

Straighten(정돈), Shine(청소), Standardize(청결), Sustain(습관화)을 의미한다. 교세라는 5S를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강요했다. 심지어 관리자들은 직원들이 파일캐비닛 위에 장식품 같은 것을 올려놓지 못

하도록 수시로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순찰했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는 교세라 샌디에이고 지사를 찾아갔을 때 중간관리자들이 책상의 정리정돈 상태를

점검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파티션에 작은 고리를 걸어놓은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고, 벽장 속에 잡동사니

가 있는 것도 지적했다. 유난스러운 이 감독은 사내에 어떤 영감을 불어넣지도, 생산성을 높이지도 못함을

기자는 발견할 수 있었다.

정신 나간 목표가 때로는 이기게 한다

1994년까지 인터넷은 틈새 찾기 게임이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소프트웨어 회사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

로소프트는 웹브라우저는커녕 웹사이트도 없었다. 하지만 웹트래픽은 매년 2천 배씩 증가했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해 달려든 사람이 바로 월스트리트의 젊은 컴퓨터과학자 제프 베조스다. 베조스는 작가 브래드 스

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떤 회사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단계에서는 무질서한 혼돈을 거쳐야 한다.”

고객들에게 아마존은 깔끔한 효율성의 대명사다. 원하는 물건을 검색해서 찾고 구매하면 물건이 도착한다.

경쟁자들에게 아마존은 마치 기계와 같다. 모든 움직임을 계산하고 모든 전략을 계량화하는, 고통을 느끼

지 못하는 차가운 킬러 로봇이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는 편견에 불과하다. 아마존의 속내는 난폭한 싸움과 정신 나간 목표, 엄청난 비용의 낭

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다.


 ‘아마존’이란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큰 강에서 따왔다. 베조스는 고객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을 파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소매상을 만들고자 했다. 1995년 아마존은 온라인으로 책을 팔기 시작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조차 없던 시기였다. 웹사이트를 오픈한 첫 주, 아마존은 1만 2천 달러의 책을

주문받았는데, 발송한 책은 846달러에 불과했다. 시작부터 주문이 밀리는 바람에 베조스는 필사적으로 발

버둥 쳤다. 관리팀은 주문받은 책을 배송하기 위해 매일 밤늦게까지 일했고, 책상을 사러 갈 시간도 없어

직원 모두가 바닥에 앉아 일했다.

당시 베조스는 엄청난 약속을 내걸었다. 100만 권 이상의 책을 갖추고 30일 이내에 무조건 반품을 받아주

겠다는 것. 구체적인 계획은 물론 없었다. 베조스는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기회를 확고히 움켜잡아야 한다

고 생각했고, 2주차에 들어섰을 때 야후의 창업자에게 이메일을 받았다. “아마존을 야후 홈페이지 목록에

올릴 수 있습니까?”

직원들은 물 한 모금 마시기 위해 소방호스를 트는 것 같다며 만류했지만, 베조스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

마존의 매출은 급격히 상승했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업무량도 늘었다. 아마존 직원들은 이 시기를 기억

도 하지 못한다. 잠도 거의 자지 못하고, 미친 듯이 일했기 때문이다. 1999년에는 주방기구와 장난감을 취

급했고, 2000년에는 닷컴버블 붕괴를 겪었다. 2007년에는 킨들을 런칭했다. 위기가 있을 때마다 베조스

는 늘 재촉했고, 거대한 혼돈을 만들어내 돌파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20분 이후에 할 일을 계획한다

면 그건 시간 낭비일 뿐이다.” 아마존의 성공 비결은 혼란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헤쳐 가는 결단력이었다 .


무질서와 혼돈은 결국 생존의 비결

다시 음악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1966년 데뷔한 데이비드 보위는 불행한 결혼생활과 심각한 마약 중독에

빠져 지내다 1976년 갑자기 서베를린으로 떠났다. 인생에서 가장 위태로운 시기, 보위는 늘 기관총을 겨누

고 있는 동독의 경계초소 바로 앞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음반을 녹음했다.

이 정신 나간 장소에서 그는 새로운 영감, 새로운 도전을 만났다. 괴짜 건반 연주자 브라이언 이노도 만났

다. 아직 어떤 노래가 나올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노와 보위는 음악코드를 칠판에 써놓고 무

작위로 가리키면 그것을 연주하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연주자들은 우리 같은 프로뮤지션을 데려다가 쓰

레기 같은 걸 연주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 괴상하고 혼란스러운 작업 끝에 탄생한 음반이 1980년대 최고의 명반으로 찬사받는 <로우>와

<히어로>다. <로우>는 팝 역사를 가장 대담한 방식으로 재발명한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튀기 위해 노력하

던 록가수가 수심에 가득 찬 긴 연주곡들을 꽉꽉 채워 앨범을 발매한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

키스 재럿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프로젝트에 임의적인 충격을 주는 것은 마법과도 같은 놀라운 결

과를 초래한다. 예측할 수 없는 장애물을 활용하는 것은 많은 경우 기대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사실

을 『메시』는 수많은 사례를 통해 알려준다. 창의적인 협업은 결국 불협화음에서 나오는 법이다. 무질서와

혼돈은 어쩌면 ‘생존’의 비결임을 팀 하포드는 도발적인 목소리로 증언한다.


김 슬 기

매일경제신문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