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남자의 시선/지식인의 서재

고사성어로 배우는 명언 4

고사성어로 배우는 명언 3




  041

  

  含沙射影(함사사영)

  含(머금을 함) 沙(모래 사) 射(활 쏠 사) 影(그림자 영)

  

  동한(東漢)시대 서기 100년경에 허신(許愼)이 편찬한 설문해자(說文解字)의 훼

부( 部)에는 전설 중의 괴물을 뜻하는  역(或) 이라는 글자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해설에 따르면,  역 이라는 괴물은 자라의 모습인데 다리는 셋 뿐이고, 

입김을 쏘아 사람을 해친다고 한다. 청대(淸代)의 왕균(王筠)이라는 학자는 이或

자에 대하여 비교적 상세하게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다. 

   일명 사공(射工), 사영(射影), 축영(祝影)이라 한다. 등은 딱딱한 껍질로 되어 

있고 머리에는 뿔이 있다. 날개가 있어 날 수 있다. 눈은 없으나 귀는 매우 밝다. 

입안에는 활과 같은 것이 가로로 걸쳐 있는데,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숨기운을 

화살처럼 뿜는다. 물이나 모래를 머금어 사람에게 쏘는데(含沙射人), 이것을 맞으

면 곧 종기가 나게 되며(中卽發瘡), 그림자에 맞은 사람도 병이 나게 된다(中影者

亦病). 

   含沙射影(모래를 머금어 그림자를 쏘다) 이란  암암리에 사람을 해치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이는 떳떳치 못한 수단으로 남을 해치는 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042

  

  兵不厭詐(병불염사)

  兵(군사 병) 不(아닐 불) 厭(싫을 염) 詐(속일 사)

  

  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에는 진(晉)나라 문공(文公)이 초(楚)나라와 전쟁을 

하고자 구범(舅犯)에게 견해를 묻는 대목이 기록되어 있다.

   초나라는 수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이 일을 성취하려면 어찌해야 되겠는가? 

라는 진 문공의 물음에 구범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제가 듣건대, 번다한 예의를 지키는 군자는 충성과 신의를 꺼리지 않지만, 전

쟁에 임해서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고 합니다(戰陣之間, 不厭詐僞). 그러니 적

을 속이는 술책을 써야 할 것입니다. 

  진 문공은 구범의 계책에 따라, 초나라의 가장 약한 우익(右翼)을 선택하였다. 

우세한 병력을 집중하여 신속하게 그곳을 공격함과 동시에 주력부대는 후퇴하는 

것으로 위장하여 초나라 군대의 좌익(左翼)을 유인해냈다. 진 문공은 곧 좌우에서 

협공하여 초나라 군대를 쳐부술 수 있었다.

  조조(曹操)도 삼국연의(三國演義) 23회에서  兵不厭詐 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

다.  兵不厭詐 는  군불염사(軍不厭詐) 라고도 하는데, 이는  전쟁에서는 모든 방

법으로 적군을 속여야 함 을 말한다. 대전(大戰)과 대선(大選)에는  兵不厭詐 라

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043

  

  掩耳盜鈴(엄이도령)

  掩(가릴 엄) 耳(귀 이) 盜(훔칠 도) 鈴(방울 령)

  

  여씨춘추(呂氏春秋) 자지(自知)편에는 귀를 막고 종을 훔치던 한 사나이의 비유

가 실려 있다. 

  춘추시대 말엽, 진(晉)나라에서는 권력을 둘러싼 귀족들의 격렬한 싸움이 전개

되었다. 마침내 대표적인 신흥 세력이었던 조간자(趙簡子)가 구세력의 핵심인 범

길사(范吉射)의 가족을 멸하였는데, 그의 가족중 살아 남은 자들은 모두 진나라를 

탈출하였다.

  어느 날, 한 사나이가 이미 몰락해 버린 범길사의 집에 들어와서는 대문에 걸려

있는 큰 종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 종을 훔쳐가려고 생각했으나 혼자 옮기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종을 조각내어 가져가려고 망치로 종을 내리친 순간,  꽝 하는 큰 

소리가 났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소리를 들을까 무서워 얼른 자기의 귀를 틀어 

막았다. 그는 자기의 귀를 막으면 자기에게도 안들리고 다른 사람들도 듣지 못하

리라 여겼던 것이다.

   掩耳盜鈴(귀 막고 방울 도둑질 하기) 은  掩耳偸鈴(엄이투령)   掩耳盜鐘(엄이

도종) 이라고도 하는데, 모두  어리석은 자가 자신의 양심을 속임 을 비유한 말

이다.

  

  044

  

  望梅解渴(망매해갈)

  望(바랄 망) 梅(매화나무 매) 解(풀 해) 渴(목마를 갈)

  

  세설신어(世說新語) 가휼(假譎)편에는 조조(曹操)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위

(魏)나라 문제(文帝)의 일화가 실려 있다.

  동한(東漢) 말엽에, 조조는 군대를 통솔하여 장수(張繡)를 정벌하러 나섰다. 행

군 도중 날씨가 너무 더워 병사들은 지치고 심한 갈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마실 

물을 찾지 못해 진군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조는 한참 생각하다가 묘책이 떠올랐는지 병사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외쳤다. 

 조금나 더 가면 앞에 큰 매화나무 숲이 있다(前有大梅林). 열매도 많이 달려 있

는데, 그 맛은 달고도 새콤하다. 이제 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다(可以解渴). 

  병사들은 매화가 있다는 말에 입안에 곧 침이 돌았다. 모두 정신을 가다듬고 다

시 전진하였는데, 얼마가지 않아 물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望梅解渴(매실을 생각하며 갈증을 풀다) 은  望梅止渴(망매지갈)   梅林解渴

(매림해갈) 이라고도 한다. 이는  공상으로 잠시 동안의 평안과 위안을 얻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이제 매실(梅實) 같은  개혁 이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045

  

  各自爲政(각자위정)

  各(각각 각) 自(스스로 자) 爲(할 위) 政(정사 정)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2년조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춘추

시대, 송(宋)나라와 정(鄭)나라가 전투를 하게 되었다. 송나라의 대장인 화원(華

元)은 장병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하여 특별히 양고기를 지급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마부인 양짐(羊斟)이라는 사람에게만 주지 않았다. 양짐은 이 일로 화원에

게 원한을 품게 되었다. 

  다음 날 접전이 시작되자, 화원은 마차 위에서 양짐에게 마차를 오른쪽으로 돌

리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양짐은 반대 방향으로 마차를 몰았다.  어디로 가는 

거냐? 라는 화원의 호령에 양짐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어제의 양고기는 당신의 뜻이고, 오늘의 이 일은 나의 생각이오(疇昔之羊子爲

政, 今日之事我爲政). 

  결국 화원은 곧 정나라 군사들에게 생포되었고, 대장이 없어진 송나라 군대는 

정나라에게 크게 패하였다. 

   各自爲政 이란  각자가 자기의 주장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 을 비유한 말이

며, 동시에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의 조화와 협력을 교훈으로 제시하고 있다.

  

  

  046

  

  門前雀羅(문전작라)

  門(문 문) 前(앞 전) 雀(참새 작) 羅(새그물 라)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에는 한(漢)나라 때의 현신(賢臣)인 급암(汲 )과 

정당시(鄭當時)의 일화가 실려 있는데, 사마천(司馬遷)은 이 편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 두었다.

   급암이나 정당시 같은 어진 이들도 세력이 있으면 빈객(賓客)이 10배로 늘어나

고, 세력이 없어 지면 빈객들은 흩어져 같다. 그러니 보통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

겠는가. 하규(下 ) 사람 적공(翟公)에게 이러한 일이 있었다. 적공이 처음 정위

(廷尉)라는 관직에 오르자 빈객들이 그의 집에 가득하였다. 그러나 그가 관직에서 

물러나자 찾아 오는 빈객들이 없어 대문에다 참새 잡는 그물을 쳐도 될 지경이 

되었다(門外可設雀羅). 후에 적공이 다시 관직에 오르게 되자 빈객들이 또다시 밀

려 들었다. 

   門前雀羅 란  문 앞의 참새 그물 이라는 뜻으로  門可雀羅(문가작라) 라고도 

한다. 이는  문밖에 새그물을 쳐도 될 만큼 찾아 오던 이들의 발길이 끊어짐 을 

비유한 말이다. 부(富)와 권세(權勢)를 누리며  문전성시(門前成市) 를 바라보다가 

몰락한 두 전직 대통령에게는 훨씬 더 큰 참새 그물이 필요할 것이다.

  

  

  047

  

  壽則多辱(수즉다욕)

  壽(목숨 수) 則(곧 즉) 多(많을 다) 辱(욕되게 할 욕)

  

  장자(莊子) 천지(天地)편에는 요(堯) 임금이 화(華)라는 고장을 여행했을 때의 

일이 실려 있다.

  요 임금이 화(華)라는 고장에 이르자 그곳의 관원이 다음가 같이 말했다.  아, 

성인(聖人)이시군요. 성인께서 장수하시도록 축복해주소서.  이에 요 임금은  사

양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그 관원이  부자가 되시도록 해주소서. 라

고 말하자, 요임금은  사양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 관원은 다시 

 많은 아들을 두소서. 라고 말했다. 요임금은 이 말에도  그것도 사양하겠습니

다. 라고 대답하였다.

  관원이 사양하는 이유를 묻자, 요임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들이 많아지면 걱정이 많아지고, 부자가 되면 귀찮은 일이 많으며, 장수하면 

욕된 일이 많아집니다(壽則多辱). 이 세가지는 덕을 기르기 위한 것이 못됩니다. 

그래서 저는 사양하는 것입니다. 

   壽則多辱 이란 나이 먹고 오래 살면 그만큼 좋지 않은 일도 많이 겪게 된다는 

말이다. 얼마전 치매 노인을 택시 회사에 방치한 일이 보도되었다. 곱게 늙는 것

은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이다.

  

  

  048

  

  歸馬放牛(귀마방우)

  歸(돌려 보낼 귀) 馬(말 마) 放(놓을 방) 牛(소 우)

  

  상서(尙書) 무성(武成)편은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상(商)나라의 주임금을 쳐

부수고 나라를 잘 다스리게 된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임금은 아침에 주(周)나라로부터 출발하여 상(商)나라를 치러 갔었다. 그 네쨋

달 초사흗날 왕은 상나라로부터 와서 풍(豊)에 이르러 무력(武力)을 거두고 문교

(文敎)를 닦아, 말은 화산의 남쪽 기슭으로 돌려 보내고 소는 도림의 들에 풀어놓

아(歸馬于華山之陽, 放牛于桃林之野), 천하에 다시 쓰지 않을 것을 보이었다. 

   歸馬 는 군용(軍用)으로 쓰던 말을 산으로 돌려보내어 놓아 주었음을 뜻한다. 

 歸馬放牛 란 곧 전쟁에 사용할 말과 소를 숲이나 들로 돌려 보내어 다시 쟁기나 

수레를 끌게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니, 이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음 을 말

한다. 

  어떤 학자는 남북이 통일되면, 남북한 군사력의 70%정도가 감소되리라고 하였

다. 그때가 되면 정말 탱크와 장갑차는 논밭을 갈고, 군함은 원양 어업에 닻을 올

리며, 전투기는 총알 택시처럼 한라에서 백두까지 날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049

  

  紙上兵談(지상병담)

  紙(종이 지) 上(위 상) 兵(군사 병) 談(말씀 담)

  

  사기(史記) 염파 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는 허울좋은 한 장군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국(戰國)시대 조(趙)나라에 조사(趙奢)와 염파(廉頗)라는 명장이 있

었는데, 이들은 진(秦)나라의 침공을 수차례 격퇴하였다. 당시 진나라의 대장이었

던 백기(白起)는 염파의 지략(智略)을 당해내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조나라에 거짓 

정보를 흘렸다. 조나라 왕은 결국 염파를 대신하여 조사의 아들인 조괄(趙括)을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조괄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서 병법을 공부하였지만 실전(實戰) 경험은 전혀 

없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장군의 직에 임용되지 않기를 원하였으나 조나라 왕

은 끝내 그를 대장으로 임명하여 전투에 내보냈다. 

  진나라 장군 백기는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나라 군대를 유인하여 공격

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괄은 진나라 군사의 화살에 죽고 수십만의 조나라 군사들

은 항복했다가 모두 생매장 당하였다.

   紙上兵談(Mere paper talk) 이란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공론(空論) 을 

비유한 말이며,  탁상공론(卓上空論:an armchair argument) 이라는 말과 같은 표

현이다.

  



  050

  

  肝膽楚越(간담초월)

  肝(간 간) 膽(쓸개 담) 楚(나라이름 초) 越(나라이름 월)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에는  중니가 말하길 뜻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

면 간과 쓸개도 초나라와 월나라 같으며(肝膽楚越也), 뜻이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만물도 모두 하나이다 라는 대목이 있다. 또한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유협(劉 )이 지은 문심조룡(文心雕龍) 비흥(比興)편에는  물체가 비록 멀리 떨어

져 있다 할지라도 합치고 보면 간과 쓸개처럼 가까운 사이이다 라는 구절이 있

다. 

   간담(肝膽) 이란 본시 관계가 매우 가까운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회남자(淮南

子) 숙진편( 眞篇)에서는  肝膽胡越(간담호월) 이라 하였는데,  肝膽楚越 과 같

은 표현이다. 이는  간과 쓸개의 거리가 초나라와 월나라의 관계처럼 멀다 라는 

뜻이며,  비록 거리상으로는 서로 가까이 있지만 마치 매우 멀리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경우 를 비유한 것이다.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도 입장에 따라서는 멀어 질 수도 있고, 또 서로 다른 관

계가 있는 것일지라도 형편에 따라서는 가까워질 수 있다. 후보 경선에 나서고 

있는 크고 작은 용(龍)들은 서로  肝膽 처럼 가깝기도 하고  楚越 처럼 멀기도 

하다.

  



  051 

  

  巧言令色(교언영색)

  巧(공교할 교) 言(말씀 언) 令(착할 령) 色(빛 색)

  

  상서(尙書) 경명( 命)편에는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백경(伯 )을 태복(太僕)

으로 임명하며 훈계하였던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대의 아래 사람들을 신중히 고르되, 교묘한 말을 하는 자, 좋은 듯 꾸민 얼

굴을 하는 자, 남의 눈치만 보는 자, 아첨하는 자는 쓰지 말고, 오직 올바른 사람

만을 쓰도록 하시오(無以巧言令色便 側媚, 其惟吉士).  

  논어(論語) 학이(學而)편에는  교묘한 말과 꾸민 얼굴에는 인이 적다(巧言令色

鮮矣仁(교언영색선의인). 이라는 말이 있으며, 공야장(公冶長)편, 양화(陽貨)편 등

에도  巧言令色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巧言(fine words) 은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교묘하게 꾸민 말 을 뜻하며  令

色(an insinuating appearance) 이란  보기 좋게 꾸민 거짓된 표정 을 뜻한다.

  TV 토론회에 출연한 대선주자들은 예상 문제(?) 풀이와 답변 연습, 그리고 좋

은 인상을 주기 위한 얼굴 가꾸기에 적지않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국민들이 기대했던 것은 그들의 말재주와 멋있는 표정이 아니었으리라.

  

  

  052

  開卷有益(개권유익)

  開(열 개) 卷(책 권) 有(있을 유) 益(더할 익)

  

  승수연담록( 水燕談錄)은 송(宋)나라 왕벽지(王闢之)가 남송(南宋) 고종(高宗) 

이전의 잡다한 일화들을 모아 엮은 책인데, 이 책의 권6에는 독서를 무척 좋아했

던 송나라 태종(太宗)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태종은 이방(李昉) 등 14명의 학자들에게 사서(辭書)를 편찬하도록 명하였다. 

이들은 이전에 발간된 많은 책들을 널리 인용하는 등 7년 동안의 작업을 통하여 

사서를 완성하였다. 55개부문으로 일천권에 달하는 방대한 이 책은 처음 서명을 

태평편류(太平編類)라 하였으나 후에는 태평어람(太平御覽)으로 개칭하였다. 

  태종은 이 사서가 완성되자 몹시 기뻐하며 매일 이 책을 읽었다. 스스로 하루에 

세 권씩 읽도록 정하여 놓고, 정사(政事)로 인해 못 읽는 경우에는 쉬는 날 이를 

보충하였다.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신하들에게, 태종은 항상 다음과 같이 말했

다.  책을 펼치면 이로움이 있으니, 짐은 이를 피로하다 여기지 않소(開卷有益, 

朕不以爲勞也). 

   開卷有益(Reading gives advantages) 이란  책을 읽으면 이로움이 있음 을 말

한다. 요즘 책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데, 모두들 황제(皇帝)보다 더 

바빠진 탓일까? 

  

  

  053

  

   轍 魚(학철부어)

   (물 마를 학) 轍(바퀴자국 철)  (붕어 부) 魚(물고기 어)

  

  장자(莊子) 외물(外物)편에는 다음과 같은 비유가 실려있다.

  집이 가난한 장주(莊周:장자의 이름)는 감하후(監河侯)에게 곡식을 빌리러 갔다. 

고을의 세금을 거둬들여 그때 삼백금을 빌려주겠다는 감하후의 말에 장주는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지며 말을 했다.

   내가 이리로 오는데 도중에 부르는 소리가 있어 뒤를 돌아보니 수레 바퀴 자

국에 붕어가 있있소(車轍中有 魚焉). 그 붕어는 약간의 물만 있어도 자신을 살릴 

수 있다고 했소. 그래서 나는 남쪽의 오월(吳越)의 왕에게로 가서 촉강(蜀江)의 

물을 보내주겠다고 했지요. 그러자 그 붕어는 불끈 성을 내며 차라리 건어물전에 

가서 자기를 찾으라고 하더군요. 

    轍 魚(a fish in a dry rut-in extremities) 는 학철지부( 轍之 ), 철부지급

(轍 之急), 고어학철(枯魚 轍), 학부(  ) 등이라고도 하며,  극도의 곤경에 처

하여 있음 을 비유한 말이다.

  북한 인구의 4분의 1인 550만명이 기아선상에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역시  허울 좋은 주체 낙원 건설 이 아니라  한 그릇의 강냉이 죽 

이다.

  

  

  

  054

  

  金迷紙醉(금미지취)

  金(쇠 금) 迷(미혹할 미) 紙(종이 지) 醉(취할 취) 

  

  송(宋)나라의 도곡(陶谷)이 편찬한 청이록(淸異錄)이라는 책에는 당나라 말엽의 

명의(名醫)인 맹부(孟斧)의 고사가 실려있다. 

  그는 독창(毒瘡) 치료에 뛰어나서, 자주 황궁에 들어가 소종(昭宗) 황제의 병을 

진료하였다. 차츰 황제를 진료하는 시간과 횟수가 많아지자, 그는 황궁내의 실내 

장식이나 기물의 배치 등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다.

  훗날 맹부는 사천(四川)지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는 황궁을 모방하여 자신의 

거처를 장식하였는데, 방안의 기물들을 모두 금종이로 포장하였다. 창문을 통하여 

햇빛이 비칠 때면, 방안은 온통 금빛으로 가득하여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를 방문했다 돌아가면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방에서 잠시 쉬었는데, 그만 금종이에 정신이 미혹되고 취해 버렸다네(此室

暫憩, 令人金迷紙醉). 

   金迷紙醉 는  紙醉金迷 라고도 하는데, 이는  지극히 사치스런 생활 을 비유한 

말이다. 일부 초대형 호화 빌라의 실내장식에도 금빛나는 외제품들만 사용된다고 

하는데, 입주자들의 건강(?)이 걱정스럽다.

  

  

  055 

  

  徒勞無功(도로무공)

  徒(헛될 도) 勞(힘쓸 로) 無(없을 무) 功(공 공)

  

  장자(莊子) 천운(天運)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있다. 

  춘추시기, 공자가 서쪽의 위(衛)나라로 유세(遊說)를 떠났다. 스승인 공자의 여

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안연(顔淵)에게 사금(師金)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물길을 가는 데에는 배가 가장 좋으며, 육지를 가는 데에는 수레가 최고이지. 

그런데 만약 배를 육지에서 밀고 간다면 평생 걸려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네. 옛

날과 지금의 차이는 물과 육지의 차이와 같으며, 주나라와 노나라의 차이도 이러

한데, 공자께서 주나라에서 시행되었던 것을 노나라에서 시행하려는 것은 배를 

육지에서 미는 것과 같아 애만 쓰고 보람은 없으며(是猶推舟于陸也, 勞而無功), 

틀림없이 몸에 재앙이 있을 걸세 . 

   徒勞無功(Toil in vain) 은  도로무익(徒勞無益) 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노력

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보람이나 이익이 없음 을 뜻한다. 

  얼마전 국가대표 청소년 축구팀이 국민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에게 10

대3으로 패하였다. 어린 선수들의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버린 것 같아 무척 안타

깝다.

  

  

  056

  

  朝薺暮鹽(조제모염)

  朝(아침 조) 薺(냉이 제) 暮(저물 모) 鹽(소금 염)

  

  당(唐)나라 한유(漢愈)의 문장 가운데 송궁문(送窮文)이라는 글이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자신에게 어려움을 주는 다섯 가지의 일들을 귀신으로 묘사하고, 이것

들을 쫓아버리려는 자신의 마음를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의인화된 궁귀(窮鬼)에게 세 번 읍하고 자신으로부터 떠나줄 것을 간청하였다.

  가난 귀신이라는  궁귀 는 한참 있다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와 선생님이 함

께 살아온지 사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저는 선생님을 어리

석게 여기지 않았으며, 선생님께서 남쪽으로 귀양갔을 때, 저는 그 고장에 익숙하

지 못하여 여러 귀신들이 속이고 능멸하였습니다. 태학에서 4년간 공부하는 동안 

아침에는 냉이나물을 먹고 저녁에는 소금으로 반찬하며(大學四年 朝薺暮鹽), 오직 

저만이 선생님을 보살펴 주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배반한 적이 없었습니다. 

   朝薺暮鹽 이란 냉이와 소금만으로 끼니를 해결할 정도로 몹시 빈곤한 생활을 

의미하며, 몇주전 KBS  일요스페셜 에 나타난 북한 주민들의 궁핍한 생활을 묘

사하는데 딱 들어맞는 표현이기도 하다.

  

  

  057

  

  人面獸心(인면수심)

  人(사람 인) 面(낯 면) 獸(짐승 수) 心(마음 심)

  

  한서(漢書) 흉노전(匈奴傳)에는 한대(漢代) 흉노들의 활동 상황 등이 기록되어 

있다. 흉노족은 서한(西漢) 시대 중국의 북방에 살았던 유목 민족이었다. 당시 한

(漢)나라는 흉노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안정되어 있었으며 경

제적으로도 풍부하였으므로, 흉노족들은 자주 한나라를 침입하였다. 흉노족의 수

십만 기마병(騎馬兵)은 해마다 한나라의 북방 국경을 넘어 들어와 농가를 기습하

여 가축을 약탈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고 납치하였던 것이다. 기원전 133년, 

한 무제(武帝)는 흉노 정벌에 나서 수년 동안의 전투를 겪으며 그들의 침공을 막

아내었다. 

  동한(東漢) 시대의 역사가인 반고(班固)는 자신의 역사서에서 흉노족의 잔악함

을 묘사하여  오랑캐들은 매우 탐욕스럽게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는데, 그들의 얼

굴은 비록 사람같으나 성질은 흉악하여 마치 짐승같다(人面獸心) 라고 기록하였

다. 

   人面獸心(man in face but brute in mind) 이란 본시 한족(漢族)들이  흉노 를 

멸시하여 쓰던 말이었으나, 후에는 성질이 잔인하고 흉악한 짐승같은 사람을 가

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058

  

  得意洋洋(득의양양)

  得(얻을 득) 意(뜻 의) 洋(넘칠 양) 洋(넘칠 양)

  

  사기(史記) 관안열전(管晏列傳)에는 겸손의 교훈을 주는 고사가 기록되어 있다. 

춘추시기, 제(齊)나라의 유명한 재상인 안영(晏 )에게는 한 마부(馬夫)가 있었다. 

어느 날, 안영이 마차를 타고 외출을 하려는데, 마부의 처가 문틈으로 자기 남편

의 거동을 엿보았다. 자신의 남편은 수레 위에 큰 차양을 씌우더니, 마차의 앞자

리에 앉아 채찍질하는 흉내를 내며 의기양양하여 매우 만족스러워 하고 있었다

(意氣揚揚, 甚自得也).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 그의 처는 그에게 이혼해야겠다고 하였다. 영문을 모르

는 마부가 그 이유를 묻자, 아내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안자(晏子)께서는 키가 6

척도 못되지만 나라의 재상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그분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매우 겸손한 태도였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키가 8척이 넘으면서도 남의 마부가 

된게 만족스런 듯 기뻐하니, 저는 이런 남자의 곁을 떠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후 마부는 늘 겸손한 태도를 지니게 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안자는 그

를 대부(大夫)로 천거하였다. 

   得意洋洋(triumphant) 은  의기양양(意氣揚揚) 이라고도 한다. 당선될 것처럼 

득의양양 떠들어대는 대선주자들에게서 마부의 모습을 보게 된다.

  

  

  059

  

  殷鑒不遠(은감불원)

  殷(성할 은) 鑒(거울 감) 不(아닐 불) 遠(멀 원)

  

  시경(詩經) 대아(大雅)편의 탕(蕩)이라는 시는 나라의 흥망(興亡)에 대한 교훈을 

노래한 것이다. 하(夏)나라 최후의 왕인 걸왕(桀王)은 잔혹한 정치로 백성들을 핍

박하다 결국 그들의 반항을 받게 되었다. 기원전 16세기경 상(商)부락의 지도자인 

탕(湯)는 군사를 일으켜 하나라를 멸하고 상나라를 세웠다. 기원전 14세기경에는, 

상나라의 왕 반경(盤庚)은 수도를 은(殷)지역으로 옮겼으며, 이때부터 상나라를 

은나라라고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은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은 주지육

림(酒池肉林)의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기원전 11세기 중엽 당시 서백후(西伯侯)의 

아들인 발(發)에게 나라를 잃고 말았다.

  은나라가 멸망하기 전, 서백후는 주왕에게 간언하기를  넘어지는 일이 일어나면 

가지와 잎은 해가 없어도 뿌리는 실상 먼저 끊어진다. 은나라 왕이 거울로 삼아

야 할 것은 하나라 걸왕 때에 있다(殷鑒不遠 在夏後之世) 라고 하였다.  鑒 은 

 선례(先例)   본보기 라는 의미로 쓰였으니,  殷鑒不遠(An example is not far 

to seek) 이란  본보기로 삼을 만한 남의 실패가 바로 가까이에 있음 을 뜻한다.

  

  

  060

  

  一擧兩得(일거양득)

  一(한 일) 擧(들 거) 兩(두 량) 得(얻을 득)

  

  사기(史記) 장의열전(張儀列傳)에 나오는 고사이다. 전국(戰國)시대, 진(秦)나라

의 혜왕은 초(楚)나라의 사신 진진(陳軫)에게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를 공격하는 

문제에 대해 물었다. 진진은 다음과 같은 고사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변장자(卞莊子)가 범을 찌르려고 하자 여관의 아이가 만류하면서  지금 두 범

이 서로 소를 잡아 먹으려 하고 있는데, 먹어 보고 맛이 있으면 서로 빼앗으려고 

싸울 것입니다. 싸우게 되면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을 것이니, 그 때 다친 

놈을 찔러 죽이면 일거에 두마리의 범을 잡았다는 이름을 얻게될 것입니다(一擧

必有雙虎之名) 라고 말했답니다. 조금 후에 두 범이 싸워서 큰 놈이 다치고 작은 

놈이 죽자, 변장자가 다친 놈을 찔러 죽이니 과연 한 번에 두 마리 범을 잡은 공

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一擧果有雙虎之功).  

   一擧兩得 은  一石二鳥(Killing two birds with one stone)   一箭雙 (일전쌍

조:화살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떨어 뜨린다) 와 같은 표현이며, 모두  한 가지 

일로써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 을 뜻한다.

  

'요남자의 시선 > 지식인의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0세시대 행복리포트 슬픈 U커브  (0) 2017.01.28
오만과 무능  (0) 2017.01.23
금융 경제 보고서 작성법  (0) 2017.01.14
판타지의 그늘  (0) 2017.01.13
고사성어로 배우는 명언 2  (0) 2017.01.13